배우에게 말은 연기를 하는 데 있어 첫 번째 무기이다. 아무리 감정이 풍부하고 역동적인 움직임으로 인물을 표현하여도 관객에게 대사가 들리지 않는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 물론, 배우의 대사 전달 문제의 가장 큰 이유는 단순 기술적인 문제이다. 발음이 나쁘거나, 억양의 문제이거나, 소리 전달력에 관한 문제 일 수 있다. 그런데 대사가 정확하고, 발음상의 문제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관객은 대사가 안 들린다고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배우가 대사를 체화하여 말하지 못하고 단순 암기해서 피상적으로 연기하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배우의 대사가 전달되지 않는 여러 가지 이유들을 살펴보고 그 해결방법을 생각해 보도록 하자.
연기를 잘해야 한다는 욕심이 너무 클 때
배우는 누구나 연기를 잘하고 싶지만 그것이 강박관념이 되면 배우 스스로의 존재감마저 상실한 채 대사를 하게 된다. 이런 경우 몸의 균형이 무너지고, 상체에 힘이 들어가고, 목을 쪼이고, 턱이 들리거나 돌출하게 되고, 호흡과 소리가 뜨는 등의 신체적 반응이 나타난다. 이런 상태에서 연기를 하다 보면 분명한 감정보다는 의미 없는 흥분이 올라오는 경우가 많다. 흥분하면 오히려 혀뿌리가 협착되고, 소리는 떠올라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게 된다. 배우는 역할의 흥분을 보여줄 수는 있지만, 자신이 흥분해서는 안된다. 따라서 몸의 균형이 무너지거나 목에 불필요한 긴장이 들어가지 않도록 하고, 턱이 들리거나 앞으로 나오지 않도록 점검하면서 쓸데없이 흥분하지 않고 소리의 중심을 유지하도록 해야 한다.
대상 없이 말을 할 때
이런 문제는 보통 대본 읽기 단계에서부터 고착화되는 경우가 많은데, 잘못된 습관이 몸에 배어 상대 배우를 보는 척만 할 뿐 정확하게 보지 못하는 상태에서 외운 대사를 만들어진 감정으로 말하는 경우이다. 배우는 상대의 존재를 명확하게 인식한 가운데 그 사람과 말하고 듣기를 해야 한다. 이 경우 말하기만큼이나 듣기가 중요하다.
대사 분석이 부족할 때
배우가 대사를 명징하게 분석하지 않고 섣불리 연기에 덤벼들면 자신이 무슨 말을, 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른 채로 가짜 연기를 하게 된다. 자신도 모르는 말을 아무 이유 없이 한다면 관객에 전달되고 이해될 수가 없다. 무슨 말을 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상황이라면 당연히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략이 서지 않는다. 정작 무슨 말을 어떻게 하느냐가 배우가 연기해야 할 캐릭터인데, 대본 읽기 단계에서부터 말이 성립되는 인과관계는 무시한 채 어떤 캐릭터를 만들지, 어떤 감정으로 대사 할지의 문제에 집착한다면 결과적으로 올바른 캐릭터를 창조할 수 없다.
호흡이 안 될 때
호흡이 얕으면 어깨가 긴장되고 목조임 현상이 발생한다. 그것은 결국 발음기관 전체에 긴장을 일으켜 자연스러운 대사를 할 수 없게 된다. 복식호흡 훈련을 통해 깊은 호흡을 유지하는 가운데 목에 불 필요한 압박을 가하지 않고 편안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배우는 한 문장을 말하고 나면 들숨을 쉬고 다음 말을 준비해야 한다. 그런데 숨을 들이마실 때 불필요한 긴장이 발생하면 짧은 순간에 많은 숨을 마실 수가 없다. 이런 경우 성대에도 긴장이 남아있는 상태로 숨을 들이마시게 되어 다음 말을 할 때 성대를 더욱 압박하게 되고, 호흡이 얕아 대사를 안정감 있게 말할 수 없게 된다. 아무리 거친 대사를 뱉은 이후라도 들숨의 순간에 성대를 이완시켜 다음 말을 할 때는 다시 안정감을 되찾아야 한다.
소리의 중심을 잡지 못할 때
순간적으로 숨을 호흡의 중심까지 들이마셨다면 그 호흡의 중심을 소리의 중심으로 삼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목에 불필요한 긴장을 주지 않고 정확하게 말할 수 있다. 감정을 억지로 만들어야 한다는 부감감은 호흡을 한순간에 낭비하면서 소리의 중심을 잃게 만든다. 배우들이 느끼는 감정이 어쩌면 목을 압박하고, 호흡을 거칠게 만들어 느끼는 긴장에 불과할 수도 있다. 이때 호흡은 얕아지고, 어깨는 긴장되어 감정이나 소리의 크기, 음의 높낮이와 강약 등의 모든 것이 목에 의존하므로 얕은 연기가 되고 만다. 배우의 소리는 목소리가 아니라 머리와 몸의 울림을 동반한 소리, 즉 몸의 소리가 되어야 한다.
말이 너무 빠르거나 끊어 읽기가 잘못된 경우
역할의 흥분상태를 보여주기 위해 말을 빠르게 하는 경우가 있는데, 가능하면 속도보다는 에너지로 감정을 표현하도록 전환하여야 한다. 일상의 흥분한 상태에서는 말의 내용전달보다는 말하는 사람의 흥분상태나 화난 정도를 드러내는 게 중요할 수 있기 때문에 말이 뜨고 빨라져서 발음이 안 들려도 상관없지만, 배우는 어떤 흥분상태에서도 대사의 전달이 우선이다. 끊어 읽기가 잘못된 경우는 어법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와 문맥의 흐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경우이다. 대사 연습 이전에 대사의 분석이 우선되어야 하고, 대사의 분석 역시 공부와 훈련이 필요하다.
배우에게 있어서 말이란 단지 소리가 아니라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도구이다. 화술의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있는 그대로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관객은 단어 속에 포함된 생각과 인상과 이미지, 나아가 침묵과 소리의 컬러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 따라는 배우는 단순 암기에 의한 글 읽기에서 말을 끝내어서는 안 되고, 말을 체화하여 마치 자신의 경험인 양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관객은 배우의 말을 들으러 오는 것이 아니라 배우의 경험을 보러 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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