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양이란 말의 고저와 강약 등의 요소들이 형성하는 선적인 형태를 말한다. 우리말은 성조가 없으므로 표준어로 이야기하는 경우에는 억양 없이 말을 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의미 전달은 가능하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억양으로 여러 가지 의미 변화가 나타날 수 있으며, 배우의 대사는 단 한 번에 정확하게 의미를 전달하여야 하므로, 기본 의미에서부터 미묘한 감정까지 억양에 대한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보통 일상생활에서는 익숙하게 몸에 밴 억양에 대해 크게 의식할 필요 없이 자연스럽게 구사할 수 있다. 하지만 배우가 대사를 할 때에는 의미나 감정에 맞지 않는 억양이 자주 나타난다. 평상시에는 원활하게 작용하던 무의식적인 직관이 무언가에 가로막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분석이 부정확한 경우가 아니라면 분석 결과를 표현으로 연결하지 못하는 경우이므로 반드시 보완이 필요하다. 여기서는 배우들에게 빈번히 발생하는 억양의 오류를 살펴보고 그 해결책을 찾아보기로 하겠다.
문장 중간의 휴지에서 발생하는 억양 오류
마치 아나운서들이 뉴스를 진행하듯 휴지 지점에서 억양을 내리는 현상은 많은 배우들에게 흔히 발견된다.
"오늘↘ 아무개 선수는↘ 일본과의 축구시합에서↘ 극적인 역전골을↘ 터트렸습니다." 휴지를 주는 경우 이와 같이 억양을 내리는 일이 많은데, 무심코 들으면 별 문제없어 보인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이것은 그저 익숙해져서 적응한 결과일 뿐 우리의 일상 어법과는 차이가 크다.
다양한 의미와 미묘한 감정까지 실어내어야 하는 배우의 대사는 발음, 휴지, 억양 등 어법에 있어 일상어의 가장 이상적인 형태를 지향하여야 한다. 그래서 위의 예문을 일상어의 어법과 비교해 보면, 네 차례 모두 다 내려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올려서도 안 된다. 올리지도 않고 내리지도 않는 억양, 즉 유지하는 억양을 사용한다. 간혹 억양이 떨어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올려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 역시 잘못된 화술이다. 다만 억양을 유지하는 느낌을 위해서는 각 단락의 마지막 음절에 모두 강세가 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이런 법칙도 모든 문장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문장 내에서 같은 성격의 표현이 여러 번 반복되는 경우에는 억양을 내려도 오류가 아닐 때가 많다. "어머닌→ 온종일→ 식사 준비에↘ 빨래에↘ 다림질에↘ 그뿐이냐↗ 뒷마당서→ 장작까지 뻐개잖니."와 같은 문장이 그러하다.
의문문의 억양 오류 - 의문사가 있는 경우
흔히 의문문은 모두 끝을 올린다는 선입견이 있다. 그래서 문장 끝에 물음표가 있으면 무조건 끝을 올리는 경우가 많지만, 영어와 마찬가지로 의문사가 있는 의문문은 기본적으로 끝을 올리지 않는다. "언제 오셨어요?"와 같은 경우 정확한 억양은 마지막 음절 바로 앞의 음절을 약간 내리고 마지막 음절에 강세를 주면서 다시 올렸다가 내리는 식으로 발음한다. 이렇게 하면 마지막 음절 바로 앞의 음절은 상대적으로 짧아지고, 마지막 음절은 길어진다. "오셨어요오→→↘↗↘"와 같다.
의문사가 없는 의문문의 억양 오류
일반 의문문에서는 "의문문의 끝은 무조건 올린다."라는 선입견이 작용해도 오류로 연결되지 않으므로 많은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는다. 다만 "-지?", "-죠?" 등으로 끝나는 의문문은 다양한 억양이 가능하므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거 언제 하죠?" (언제 하죠↗)와 같은 경우, "언제"라는 의문사가 있지만 끝을 올리는 것이 맞는 억양이다. 반면 의문사가 없는 경우에는 끝을 올릴 수도 있지만, 앞서 의문사 의문문의 경우처럼 끝을 올렸다 내리는 억양이 더욱 일반적이다. 가령, "그 사람 왔죠? 의 경우 "왔죠↗"와 "왔죠→→↘↗↘" 모두 가능하다.
배우는 위의 두 가지 억양 중 감정 분석에 의해 어느 한쪽을 선택하여 그대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분명 올리겠다고 마음먹었지만 꼬부리게 되거나, 꼬부리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올리게 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배우는 자신의 의지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스스로 귀가 열리고, 발음기관이 자신의 통제를 따를 수 있도록 훈련되어야 한다.
평서문의 억양 오류
평서문의 종결 어미는 빠른 속도로 약해지며 하향 곡선을 그리기 때문에 음절 당 걸리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짧아진다. 그런데 모든 음적을 또박또박 말하다 보면 어미까지 과도한 힘이 가해져 명령문과 혼동을 일으킬 가능성이 발생한다. 즉, "-습니다."나 "-다."로 끝나는 어미가 아닌 "-아, 어, 여, 해" 등으로 끝나는 어미의 경우 "밥 먹었어.", "밥 먹었어?"와 같은 혼동이 발생할 수 있다.
이상 배우의 억양에 있어 범하기 쉬운 오류들과 교정 방법을 살펴보았다. 연기자는 직관을 가로막는 어설픈 자의식을 배제하고, 자신이 구사하는 대사가 어떤 선을 그려내는지 살필 줄 알아야 한다. 또한 그것이 어법에 맞게 이루어지는지 점검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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