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연기

자연스러운 연기의 개념과 방법

by ※◇♧‡ 2023. 6. 12.

연기의 1번 덕목은 뭐니 뭐니 해도 자연스러움이다. 관객은 특별히 자연스러운 연기에 민감하다. 어쩌면 부자연스러운 연기에 더 민감하다고도 할 수 있겠다. 조금이라도 자연스러움에서 어긋나는 순간 관객의 몰임은 깨지고 만다. 하지만 연기술을 훈련하는 모든 단계는 어쩐지 자연스러움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그래서 매체 연기와 무대 연기의 차이점을 이 자연스러움의 차이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여기서는 자연스러운 연기란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자연스러운 연기가 되는지 그 방법을 살펴보자.

 

자연스러운 연기란 무엇인가?

관객은 무대 위의 세계가 진짜 세상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런데도 배우의 연기에 울고 웃는다. 가짜인 줄 머리로는 알지만 정서적으로 현실감을 느꼈다는 말이다. 관객은 극장에 갈 때 이미 꾸며진 연극을 보러 간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무대 위의 환상(illusion)만 형성된다면 얼마든지 속아줄 준비가 되어있다. 배우는 속을 준비가 되어있는 관객을 속이기만 하면 된다, 자연스럽게.

흔히 일상과 무대의 간극을 이해하는 방법으로 극적 진실을 이야기한다. 관객이 진실이라고 느끼는 것은 일상적 진실이 아니라 극 속에서의 진실이라는 개념이다.

관객은 무대 위의 세계가 현실 세상과 다르다는 것을 알 뿐만 아니라 다르기를 바란다.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를 잠시 경험하는 정서적 일탈을 원해서 극장에 가는 것이다. 그런데 무대가 일상의 연장으로 느껴진다면 오히려 부자연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일상의 세상은 복잡하다. 선과 악, 미와 추, 질서와 무질서가 혼돈으로 섞여있다. 하지만 인간은 악과 추와 무질서는 감추고, 선과 미와 질서만 드러내고 싶어 한다. 무대 위의 세상은 감추어진 악과 추와 무질서를 파헤친다. 관객은 어둠 속에 안전하게 앉아서 감추고 싶었던 그 이면을 보는 것이다. 나와 닮았지만 어딘가 다른 모습에서 동질감과 함께 긴장감을 느끼는 것이다. 즉, 자연스러운 연기란 나랑 닮았지만 나에게 없는, 사실은 감추고 있는 무언가를 드러내는 연기이다. 

 

연기는 아름다운 예술이 아니다.

대부분의 예술은 본질적으로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하지만 연기는 인간의 추함을 들추어내는 것이 그 본질이다. 극 중 인물은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하지만 보통의 인간은 철저히 욕망을 감춘다. 사소한 욕망도 감추도록 사회적 훈련을 받는다. 내면이야 어떻든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선을 행하도록 포장하는 방법을 배운다. 이것이 우리 세상의 자연스러움이다. 하지만 극 중 인물은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욕망을 드러내지 않는 인물은 무대에 존재할 이유가 없다. 강한 욕망을 드러내고 전력을 다해 돌진하는 모습. 이것이 무대 위 인물의 자연스러움이다. 

 

위태로워야 자연스럽다.

인간은 모두 안전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 질서 있고, 예측 가능하며, 실패의 확률이 적은 상태가 안전한 상태이다. 하지만 무대 위의 세상은 무질서하고, 예측 불가능하며, 실패의 확률이 높을수록 흥미롭다. 안전하지 않은 세상이라는 것이 무대 위 세계의 전제 조건이다. 따라서 극 중 인물은 일상과 같은 선택을 해서는 안 된다. 일상과 같은 매끈하고 안전한 연기는 매력이 떨어진다. 칼 날 위에 선 듯 위태롭고, 불을 들고 기름 위를 걷듯 예측 불가능 할수록 매력적이다. 

 

욕망과 장해의 간극이 커야 위태로워 보인다.

위에서 강한 욕망을 드러내고 전력을 다해 돌진하는 모습이 무대 위의 자연스러움이라고 했다. 이때의 욕망은 성취하기 어려울수록 매력적이다. 악당이 강할수록 드라마가 재미있어지는 이유이다. 쉽사리 이룰 수 없어 보이는 목표를 둔 인물이 그 성취를 믿고 달려드는 모습은 성공과 실패를 떠나 감동적이다. 안전하고 싶어 하는 일상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관객은 더욱 위험을 열망한다. 일상과 같은 선택을 한다면 관객이 극장까지 갈 이유가 없다. 김 빠진 연기는 매력적이지도 자연스럽지도 않다.

 

기본기 훈련은 기본이다.

이상의 논의들은 기본기 훈련이 전제된 다음의 이야기이다. 발음이 부정확하거나 호흡이 짧거나 자세가 어정쩡한 배우를 두고 자연스러운 연기를 논할 필요는 없다. 최소한 목표를 투사하고 의도한 바대로 행동할 수 있는 기본 훈련이 필요하다. 기본기를 확실히 또 꾸준히 연습해야 자연스러운 연기도 시작된다. 

 

지금까지 자연스러운 연기의 개념과 방법에 대해 살펴보았다. 연기는 무대 위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서 시작된다. 관객은 일상을 벗어나 정신적 일탈을 경험하기 위해 극장에 오는 것이다. 배우는 관객을 대신하여 일상의 이면을 파헤쳐 보여 줄 수 있어야 한다. 내가 감추어 둔 적나라한 모습을 배우를 통하여 볼 때 관객은 카타르시스를 느낀다.